그것이알고싶다 그알 에서는 30년 만에 무죄를 인정받은 장동익, 최인철 씨, 그리고 이들을 도운 박준영 변호사의 이야기를 통해 재심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억울한 누명을 쓴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진실과 당시 경찰,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그것이알고싶다 그알 억울한 옥살이 21년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무죄 판결 당시 변호인 문재인 대통령
"무죄를 선고한다"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정말 긴 시간을 싸웠습니다. 언젠가 진실은 밝혀질 거라고 믿어왔다는 최인철 씨와 장동익 씨. 선고가 내려지는 순간 그들은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듯했습니다.
사건은 3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나는 안 죽였어요"
돌아온 건 매질이었다고 했습니다. 낙동강변 살인 사건은 1990년 1월 4일 부산 낙동강변에서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던 30대 여성이 잔혹하게 살해당한 사건입니다.
여성은 성폭행까지 당한 뒤 살해됐습니다. 미제로 남는 듯했던 사건에서 경찰은 1년 10개월이 지나서야 두 사람을 범인이라며 체포했습니다. 아무리 결백함을 호소해도 경찰은 이들의 목소리를 짓밟았습니다.
1991년 11월, 부산 을숙도 환경보호 구역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최인철 씨는 한 남성으로부터 3만 원을 받게 됩니다. 환경보호 구역에서 불법 운전 연수를 하던 남자가 최 씨를 단속 공무원으로 착각해, 봐달라며 돈을 건넨 것. 그날, 최 씨가 얼떨결에 받은 이 3만 원은 상상도 못 할 비극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퇴근하던 최인철 씨에게 찾아온 경찰! 최 씨는 공무원을 사칭해 3만 원을 강탈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함께 있었던 친구 장동익 씨도 경찰 조사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을 공무원 사칭 혐의로 조사하던 경찰은 이들이 ‘2인조’라는 점에 주목해, 1990년에 발생해 미제로 남은 1년 전 낙동강변 살인사건을 떠올렸습니다.
이윽고 최 씨와 장 씨, 그리고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생존자 김 씨의 대면이 이어졌습니다. 둘의 얼굴을 마주한 김 씨는 그들이 범인이라 주장하게 되었고, 순식간에 최 씨와 장 씨는 살인사건 용의자가 되었습니다. 목격자만이 존재하고 직접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던 사건, 두 사람을 살인사건 피의자로 기소하기 위해 경찰이 꼭 필요했던 건 하나.
바로 ‘자백’이었습니다.
“ 손목에는 화장지를 감은 뒤 수갑을 채웠고,
쇠 파이프를 다리 사이에 끼워 거꾸로 매달은 상태에서
헝겊을 덮은 얼굴 위로 겨자 섞은 물을 부었죠. ”
-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무죄, 최인철 씨 인터뷰 중
경찰의 무자비한 폭행과 고문을 못 견딘 두 사람은 결국 허위 자백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그들은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기징역을 선고받은 두 사람은 21년간 옥살이를 하다 2013년에야 모범수로 출소했습니다. 과거 이들의 변호인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 사건을 자신의 변호사 시절 가장 안타까운 사건으로 꼽기도 했습니다.
뒤늦게 사건이 주목받으며 2019년 대검찰청 과거사위원회는 '고문으로 범인이 조작됐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렇게 부산고법에서 열리게 된 재심에서 이들의 무죄가 끝내 밝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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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알고싶다 그알 억울한 옥살이 21년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무죄 판결 당시 변호인 문재인 대통령
■ 법원 “허위로 자백 받기 위한 고문·가혹행위 이루어져”
2월 4일 오전 부산고법에서 열린 ‘낙동강변 재심사건’ 판결 직후 청구인인 장동익 씨와 최인철 씨가 법정을 나서고 있습니다. 부산고법 제1형사부는 오늘(2월 4일) 선고 공판에서 두 사람에게 강도살인 등 주요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당시 형사들이 이들을 연행해 조사한 후 귀가시키지 않고 보호실에 유치한 행위는 불법 체포 및 불법 구금에 해당한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이 과정에서 수집한 증거가 증거로서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 허위로 자백을 받아내기 위하여 경찰 수사관들에 의한 고문 및 가혹 행위가 이루어졌다"고 판단했습니다. 경찰이 증인이라고 내세운 사람들의 진술도 믿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범인 식별 절차 자체가 위법하게 되었고 진술이 일관되지도 않을뿐더러 현장에 있었다는 사람들이 실존하는 인물인지조차 의심이 간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들이 단순 공무원 사칭범에서 살인사건 용의자가 되기까지 조작된 것은 이뿐만이 아니라고 의심됩니다. 조사를 받던 당시, 갑자기 사건 담당 경찰서가 아닌 다른 경찰서에 끌려갔다고 말하는 최 씨와 장 씨.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한 경찰이 두 사람을 보자마자 갑자기 2년 전 자신에게 강도질을 한 사람들 같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당시 재판부는 이 순경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두 사람은 상습적으로 강도질을 하다 살인까지 저지른 살인강도범이 되었습니다. 순경의 진술만이 증거였던 이 사건의 수사 결과에도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피해자이자 목격자인 순경은 정작 상세한 사건시기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으며, 강도 사건 발생 당시 경찰에 신고조차 한 사실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심지어 사건 당시 타고 있었다고 주장한 ‘르망’ 승용차의 경우, 차량 번호조회 결과 전혀 다른 모델의 차량이었고, 함께 강도를 당했다던 여성의 행방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30년 전과는 달리, 이번 재심 재판부는 이 강도 사건에서 순경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의 조작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 것입니다.
“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낸, 전부 다 소설인 거죠.”
-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의자 무죄’ 최초 보도, 문상현 기자
고문을 통한 살인사건의 허위로 자백, 그리고 강도 사건의 조작까지... 당시 경찰은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두 사람을 살인사건 용의자로 만들었던 것일까? 재심을 통해 무죄를 인정받은 두 사람이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들에게 꼭 묻고 싶은 질문입니다.제작진이 어렵사리 만난 당시 수사 관계자들.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재판부는 최 씨의 무면허 운전 등만 유죄로 보고 6개월 선고 유예를 내렸을 뿐 나머지 혐의는 모두 무죄 판결했습니다.
■ 용서하려는 자와 사과하지 않는 자
국가 공권력의 폭력을 지적한 법원 역시 과거 재판 과정에서 잘잘못을 가려내지 못했다며 고개 숙였습니다. 재판을 맡은 곽병수 부장판사는 선고를 마치며 “ 법원이 인권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점에 사법부 구성원의 일원으로 피고인과 가족들에게 사과드린다"고 말했습니다. 또 “재심 판결이 피고인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명예회복에 보탬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재심 청구인들도 마침내 환한 미소를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재심 과정에서도 끝끝내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당시 가해 형사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재심이 결정되었을 때, 그때 생각을 했어요.
놓아야겠다. 용서해야겠다.
내 마음속에 품고 있어 봐야 나 자신이 힘드니까, 나는 놔야겠다.
-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무죄선고, 장동익 씨
장동익 씨는 “ 사과하면 용서하겠다고 말했지만, 어느 형사 하나 손을 내미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사건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 역시 가해 형사들이 이제라도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를 바랐습니다.
억울한 21년의 옥살이, 그 세월은 장동익 씨와 최인철 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 사랑스러운 자식들은 어느덧 성인이 되었고, 멋진 앞날을 기대하던 30대 가장은 어느덧 50대가 되었습니다. ‘왜 하필 나일까?’라는 생각을 수십 번도 되뇌었다는 장동익 씨.
하지만 정작 그 답을 해줘야 할 당시 수사팀 경찰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르는 일이다.’라며 그 답을 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진실을 밝히고 사과할 용기가 없는 것일까. 용서하고자 하는 사람은 있으나 용서를 구하는 사람은 없는 안타까운 상황. 죄 없는 최 씨와 장 씨에게 누명을 씌우고 30년의 청춘을 앗아간 당시 경찰, 검찰, 사법부는 두 사람에게 어떻게 사과해야 할까?
이제 이들은 잃어버린 31년을 보상받기 위한 새로운 길을 내딛습니다. 청구인과 변호인은 당시 청구인들의 무죄를 입증할 진술을 했다는 이유로 위증 처벌받은 가족들을 위한 다른 재심을 청구하는 한편 국가를 상대로 한 배상 소송을 진행할 계획입니다.